“ 공주님께 영생을 바칩니다. ”
여성 · 38세 · 스칼렛
순도높은 토파즈의 색이 떠오르는 반곱슬의 머리카락과 어두운 청회색 눈동자. 건조한 입술. 눈꺼풀과 눈썹의 간격이 좁은 탓인지 눈빛이 무척 날카롭다. 상관은 사나웠지만 편안한 자리에서는 늘 은은히 머금고 있는 웃음을 가진 입술과 부드러운 하관의 선 때문인지 사나워 보이지 않았다. 평시에는 대체로 자신만만한 부드러움이 묻어나는 얼굴이다. 생에 대부분의 시간을 전장에서 보냈으므로 사복이나 귀족의 예복, 드레스를 입고 공적인 자리에서 나타난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는 이는 드물었다. 비무장시 170cm, 55~57kg. 무장시의 신장과 중량은 착용하는 장비에 따라 각기 달랐다. 아름다운 상아색 피부와 빼어난 골격을 가졌지만 옷 아래로는 근육으로 다져진 투박한 몸매를 지니고 있다.
열 여덟 살에 이미 귀족가의 장녀이기를 포기했으므로 풍기는 분위기는 여성이라기보단 중성적인 느낌이다.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는 일도 드물었지만 지나치게 추할 만큼 서민스러운 모습을 택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의복과 예식에 있어 늘 건조한 수수함을 택했다. 그리고 그 위에다 혈통으로서, 태어남으로서 누린 아름다움을 덧칠해놓는 식이었다. 이는 그녀가 남성위주로 편성되어 있는 전쟁터와 국경지대의 생활권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냈기 때문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열 여덟에 왕가에 올린 서약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다. 여러 풍문이 돌지만 확실한 건 보통 여성이 주는 느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중성적인 느낌은 귀족가의 남성들에게는 자신에게만큼은 고운 여성으로 웃어주기를 바라는 욕망을, 여성들에게는 닮고싶어하는 열망을 이끌어낸다. 가뭄에 콩나듯 참여하는 귀족가의 연회나 왕정의 행사에서는 품위있는 청년이기도 했고 때로는 아가씨이기도 했다.
머물렀던 전장에서의 모습은 자신과 함께 죽기 위해 자리한 전우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사소한 무장 하나 빼어놓지 않고 모조리 갖추었다. 전장에서의 자리는 가장 최전방이었으므로 착용했던 무장의 무게 또한 어마어마하다. 가문의 상징인 가시 돋힌 장미 덩쿨이 세공되어 있는 갑옷은 앵굴로메 지역에서만 채광되는 흑철로 만들어져 있다. 이 흑철은 액체를 머금을수록 질겨졌고, 녹이 슬수록 단단해졌다. 다른 영광의 기사들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갑옷을 걸치는 반면 앵굴로메 영지의 기사들과 이드릴은 해묵은 색의 검은 갑옷을 입었다. 이 갑옷을 입고 전장에 한차례 다녀오는 것 만으로 5kg정도의 체중이 빠져나간다. 전투가 지속될수록, 적과 아군의 피를 머금으면 머금을수록 단단해졌지만 동시에 무거워지며 착용자를 짓누르는 앵굴로메의 흑철갑옷은 그들이 지향하는 오랜 숙명을 닮아있었다. 이드릴은 이 갑옷을 입고 세자루의 검을 사용한다. 아주 긴 날을 가지고 있는 강철검과 적당한 길이의 은검. 그리고 짧은 길이의 연철로 만들어진 소검이다.
우아함, 강인한,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앵굴로메
앵굴로메는 왕의 담 혹은 메이딜란드의 벽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가문이다. 영지는 마갈리를 기준으로 북서쪽의 협곡지대에 위치해있다. 혹독한 극지로 일년 내내 눈이 내린다. 건국과 비슷한 시기에 귀족가를 인정받고 아주 오랜 시간 메이딜란드 왕가에 충정을 다했다. 그들은 곁에서 왕을 보필하지 않으며, 곁에서 왕을 지키지 않는다. 오직 메이딜란드 땅과 메이딜란드의 국경. 메이딜란드의 백성과 그를 이끄는 왕족의 터전을 수호할 뿐이다. 즉 앵굴로메게 메이딜란드에 바치는 충정은 '가장 먼 곳에서 가장 진실된 숭고로서 답하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앵굴로메 영지의 청년들이 검은 갑옷을 입고 전쟁터에서 죽어나갔다. 하지만 앵굴로메의 그 누구도 이 잔인을 멈출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전장에서 지키고자 하는 바를 지키기 위해 죽는 것은 비참이나 슬픔이 아닌 영광과 축복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쌓아올린 앵굴로메의 영예는 드높았고 메이딜란드가 앵굴로메에 보내는 신뢰 또한 두터웠다. 혐지와 열지에서 무수히 많은 적과 싸우고 국경을 굳건히 하는 앵굴로메는 적국과 야만인들에게는 공포의 이름이요, 메이딜란드의 백성들에게는 수호의 이름이다. 메이딜란드가 멸망하는 최후의 날 까지.
이드릴 앵굴로메
이드릴은 메이딜란드 국력 594년에 태어났다. 귀족들과 메이딜란드 국왕과 백성들은 그녀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앵굴로메 영지에서 검을 쥐는 것에 있어서는 남녀의 차별이 전무하기로 유명했으며 그건 이드릴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수저를 쥐는 법과 동시에 검을 쥐는 법을 배웠다. 또한 그녀는 남동생이자 가문의 공식 후계자인 동생 칼린 앵굴로메가 태어나기 전 까지 다른 남성 가문의 장남들과 마찬가지로 후계자 교육을 받았다. 605년 겨울 만삭의 어머니는 칼린 앵굴로메를 낳으며 죽었고, 마지막 부탁으로 이드릴을 가문의 후계자가 아닌 행복한 여성으로서 키워줄 것을 당부받은 아버지는 그 약속을 꼭 지키겠노라 맹세를 했다. 동생의 탄생은 이드릴의 유년기를 뒤흔들었다. 잘 쥐어왔던 칼 대신 바늘을 들고 갑옷 대신 드레스를 입었다. 모든것이 어색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었다. 그녀는 아주 오랜 시간 납득하지 못했다. 앵굴로메는 무골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버지도 기사요, 아버지의 아버지도 기사였으니 그녀 또한 기사여야만 한다는 게 영지민들과 그녀의 생각이었다.
앵굴로메의 주민들이 모조리 그녀의 스승이었고 그녀의 대련 상대였다. 가주인 아버지는 모든 행위들을 철저히 단속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결국 열둘이 되던 해 이드릴 앵굴로메는 숙녀는 커녕 어엿한 검사가 되어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세자루의 검을 동생이 아닌 이드릴에게 하사했고, 그녀가 앵굴로메의 기사임을 인정했다. 이 세자루의 검은 각각 메이딜란드의 보호에 대한 의무, 메이딜란드의 국왕에 대한 충성 그리고 앵굴로메로서의 긍지를 상징한다. 이 세자루의 검을 하사받고 곧장 메이딜란드 사관 학교에 입학하였고, 18세가 되던 해 졸업과 동시에 임관하였다.
임관 직후 이드릴은 스스로의 청과 앵굴로메라는 이름을 이용하여 국경으로 파병된다. 공식적으로는 메이딜란드의 군인이었지만 앵굴로메의 기사들과 함께 움직였다. 흑철의 갑옷을 두른 기사들은 메이딜란드의 어느 곳에서든 적과 맞섰다. 이드릴 앵굴로메의 길고 긴 헌신은 오르키드의 반란이 아니었다면 영원토록 지속되었을 것이다.
이드릴 앵굴로메와 루드밀라 R 메이딜란드
서른 여덟 살의 걸출한 여기사는 수많은 전공과 무용담으로 인해 아주 많은 별칭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별칭은 '정절의 검' 이다. 그녀는 말 그대로 정절을 바쳤는데, 그 상대는 다름 아닌 루드밀라 R 메이딜란드 공주였다. 그녀가 스무살이 되던 해에 태어난 공주에게 앵굴로메 가문은 선물로서 이드릴 앵굴로메의 충정과 정절을 바친다. 지독하게 불안정하고 위태로웠던 정세와 기반이 뚜렷하지 못한 왕비에게서 태어난 공주를 평생토록 보호하기로 선포한 것이다. 이 파격적인 선언에 세간이 들썩였고 백성들 사이에서도 엥굴로메가 장녀의 정절을 바쳐 공주를 수호할 것을 공표했노라고 소문이 돌았다. 어느쪽으로나 야욕을 실현할 수 있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러한 파격적이면서도 굳건한 선택은 귀족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가히 '메이딜란드의 벽 다운' 선택이었다. 그리하여 이드릴 앵굴로메는 성인식을 하는 대신 어린 공주의 손에 입을 맞추며 자신의 정절을 바쳤다. 이는 장녀로서 후계자 교육을 끝마쳤지만 동생에게 가문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했던 이드릴 앵굴로메가 불화의 싹으로 자라날 가능성을 제거해버리기 위한 아버지의 뜻이었다. 한때 행복한 여성으로 살아가도록 키우겠노라 맹세를 했던 아버지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권력 투쟁과, 반란의 징조를 견뎌내는 것에 지쳐있었고 순수한 기사로서의 삶이 이드릴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드릴은 그렇게 자신의 평생과 정절을 루드밀라 공주에게 바친 후 홀연히 국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20년이 지났지만 이드릴의 생은 다를 것이 없었다. 공적을 올리고 마갈리로 입성할 때나 출정 전날의 밤에는 가장 최우선으로 루드밀라를 찾아가 나라와 군인으로서의 관계가 아닌 기사와 레이디의 관계로서 출정과 복귀를 고한다. 이드릴은 공주에 대한 충정의 증명으로서 메이딜란드의 국왕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는 중간길이 검의 검날에 루드밀라의 이름을 새겼으며, 메이딜란드 왕가에서는 앵굴로메의 충정에 대한 보답으로 매해 루드밀라의 탄신일에 장미 한송이를 하사한다. 이 장미는 마갈리에 위치한 앵굴로메의 저택에서 소중히 길러진다. 또한 앵굴로메에서는 이 장미를 제외한 그 어떤 장미도 수확하거나 재배하지 않는다. 오직 루드밀라가 하사한 장미 뿐이다.
앵굴로메의 기사에게는 온갖 법도와 예절이 요구되었다. 예를 갖추는 상황에서의 그들은 귀족조차 그 상대가 벅찰 정도로 품위있고 명예로웠다. 또한 그들에게는 귀천과 빈부, 남녀와 노소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예우했다. 죽기 직전의 노기사조차도 열 여덟 짜리 소기사에게 고개를 숙이고 서로 예를 표했다. 이드릴 앵굴로메는 이러한 앵굴로메의 기사들을 보고 자라났기에 어떤 자리에서도 품위를 잃는 법이 없었다. 그곳이 그 어떤 위협과 고통으로 얼룩진 곳일지라도. 이드릴이 서른 여섯이 되던 해에 출정한 남쪽의 정벌은 어느덧 육백일째를 지나고 있었다. 정벌이 길면 길어질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휴식은 더욱 간절해지는 법이다. 앵굴로메의 기사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예우했지만 이 그리움과 휴식에 대한 갈망은 각자 스스로 목을 축이는 수 밖에는 없었다. 온전히 혼자서만 해결해야만 하는 고독의 부분인 것이다. 이드릴은 육백일의 시간 동안 쓰러트린 적과 자신을 죽음에 이르르게 할 뻔 했던 적들의 수를 헤아리고는 인상을 썼다. 그리고는 허심탄회한 웃음을 지어버린다. 육백일 전, 마갈리로부터 밤낮으로 열흘을 달려 이곳에 당도했다. 곧장 국경을 따라 순회를 했으니 지금은 아마 열나흘 정도의 거리였다. 낮에는 무수히 많은 적을 베어넘겼다. 온통 뜨거운 열기만이 가득했다. 플레이트 위로 스며올라오는 열기에 숨이 막혀왔다. 전투의 막바지에 이르른 기사들은 검은색 철판 위에 시뻘건 피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마지막 적을 쓰러트렸다. 이곳은 새벽이 되는 순간조차 서늘한 바람이 불지 않는다. 이드릴은 등불 아래 펼쳐놓은 책의 낱장을 넘기며 문득 막심한 현기증을 느낀다. 천막 구석에 나란히 걸려있는 세자루의 검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피로로 인한 환상일까? 이드릴은 불현듯 공주의 장미 향을 맡았다.
스무살. 성인식을 기대했던 나는 뜻밖의 소식에 놀랐지만 자신이 성인식을 하지 않고 곧장 영원한 처녀로 남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 번복하거나 불쾌해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평생을 바치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정신을 헌신할 수 있다는 건 영광이었으니까. 게다가 그 상대가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갈 왕손이었으니까. 동생은 우려를 표했지만 아버지는 개의치 않았고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나는 공주의 기사로서, 나아가 여왕의 기사로서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마갈리 저택의 옷장에 걸려 있던 아름다운 드레스를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나는 주위의 우려가 이해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남긴 바람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일까. 혹은 아버지의 정치적인 조치가 들지 않아서일까. 둘 모두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는데. 세상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투였다. 나는 검은 갑옷을 입고 아버지의 앞에 무릎꿇는다. 세 자루의 검을 물려받는 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었다. 동생은 온전히 가주가 되어 앵굴로메를 빛낼 것이고, 아버지는 편안한 여생을 마감한다. 나는 죽을 때 까지 공주의 곁을 지킨다. 왕비의 진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왕궁으로부터 연락이 닿았고, 곧장 아버지와 입궁했다. 공교롭게도 성인식이 진행되었던 날이었다. 그 곳에 아름다운 처녀와 청년들이 무수히 많았었음에도 오늘의 주인공은 나였다. 화려한 드레스와 향기로운 화관 대신 육중한 갑옷과 날카로운 검을 선택한 처녀. 왕의 어전은 고요했다.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만이 높디높은 천장을 타고 울려퍼졌다. 하나둘 다가와 무릎을 꿇고 탄생을 축복하는 모습은 축하라기보다는 엄숙에 가까웠다. 막대한 크기의 문이 열리고 어전에 나와 아버지가 들어섰을 때. 귀족들은 온갖 의구스런 눈빛과 함께 찬사를 보낸다. 핏덩이 같은 공주는 그녀의 곁에 뻗어진 나의 손가락을 아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똑똑히 눈을 마주보았다. 어떤 의식도 지식도 없는 이 갓난아이는 본능적으로 내가 자신을 살려줄 수 있는 존재임을 알아차렸다. 한쪽 무릎을 꿇고 반대쪽 손을 가슴에 올려놓는다. 쇠들이 닿아 절그럭거리는 소음을 낸다.
영원하십시오.
허리를 기울여 내 손가락에 감긴 공주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허리춤에 걸린 검에 아주 커다란 무게가 실리는 순간이었다.
" 이드릴님, 마갈리로부터의 급파입니다. "
" 들어오게. "
사색을 깬 건 동생의 어린 종자였다. 육백일의 사이 부쩍 키가 자라고 어깨가 벌어진 모습이었다. 종자는 말을 맡기고 곧장 찾아온 모양이었는지 엉망으로 헝클어진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서늘하게 식은 물 한사발을 권한 후 의자를 잡아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고향의 일이라거나 수도의 일. 아버지나 동생의 안부를 묻지는 않았다. 급사가 왔다는 사실은 필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고 이런 일에 앞서 여러가지 잡념으로 마음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잠시고 스쳐간 스무살의 날을 떠올리기 직전에 맡았던 향이 거슬리게 느껴졌기에 읽던 책을 덮고 등불의 빗장을 열어 천막 안을 조금 더 환하게 만들었다. 머리속을 정리해 명확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준비인지, 혹은 어떤 충격에서 아직까지도 빠져나오지 못한 탓인지 입을 열기 두려워했다. 종자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 틈으로 가느다랗게 뜬 달을 올려다보았다. 핏덩이 같은 공주의 손에 입을 맞춘 그날로부터 길고도 먼 시간. 무수히 많은 시간이 흘러있었다.
" 앵굴로메의 종자여, 네가 그 어떤 말을 할지라도 나는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개의치 말고 말하라. "
" 롤링우드가 반역을 저질렀습니다. "
공주는 아주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한번의 출정을 마치고 돌아와 기사로서 입맞추었던 손등은 날이 갈수록 영글고, 가늘어져갔다. 나는 한사코 공주의 곁에서 공주를 보필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행복하게 자라나는 것과는 처지가 먼 공주의 삶이 천천히 치열해져가고 무수히 많은 시련과 아픔을 겪고 모질어져 가는 과정의 곁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오직 굳건히 지켜내는 일 뿐이고. 멀고도 먼 이곳의 흉악이 마갈리의 성문을 넘지 않도록 하는 일 뿐이었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공주와 검을 맞대고 대련했던 가을이 불과 몇년 전이었다. 손목이 시큰거릴 정도로 힘껏 후려치는 공주의 검끝에는 누군가를 지키거나 살해하려는 마음보다는 순순히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목적으로 휘두른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육백일의 전과 육천일의 전에도 무엇 하나 변한 것 없는 마음만이 존재했다. 흘러내린 옷자락을 끌어올리고 진열된 중간 길이의 은검을 뽑아들었다.
" 너는 지금 당장 기사들과 함께 앵굴로메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려라. "
" 이드릴님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
이드릴은 은빛 검신에 입을 맞춘 후 종자의 질문에 답했다.
" 나는 내 정절의 주인에게 돌아간다. "
루드밀라, 검에 새겨진 이름은 그 어느때보다도 선명했다.